앞서 영국 뇌물법(UK Bribery Act) 개요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2010년 해당 법의 제정 이후 영국 내 기업의 뇌물 사건 집행 건수는 증가세를 보여왔다. 이러한 경향은 지난 2018년 8월 뇌물법을 주관하는 영국 중대비리수사청(이하 SFO)에 리사 오솝스키(Lisa Osofsky)가 새로운 기관장(Director)으로 부임하면서 더욱 강화될 것으로 예측되었다. 오솝스키의 부임 이후 SFO는 2018년 11월 한 연설에서 △수사 가속화(progressing cases at pace) △국내외의 타 수사기관과의 협력 강화(working collaboratively with partners) △뇌물법, 기소유예약정 등의 최대한의 도구 활용(making full use of the tools available to us)을 조직의 우선순위이자 목표로 삼겠다고 공표하고, 이를 실행에 옮겨왔다. 이처럼 영국 뇌물법 집행이 한 층 더 활발해질 것으로 예측되는 가운데 본 글에서는 롤스로이스와 에어버스의 뇌물법 위반 혐의의 집행 과정 및 결과를 확인하여 영국 뇌물법의 최신 동향을 살펴본다.
2020년 2월, 영국 뇌물법 시행 역사상 최대의 기소유예약정(Deferred Prosecution Agreement) 합의금 및 벌금인 8억3천만파운드(1조3천억원)가 SFO에 납부되었다. 그 대상인 유럽 최대의 항공우주방위산업체인 에어버스 그룹은 2008년부터 2015년까지 전 세계에 퍼져 있는 자사 사업망에서 민간 및 군용 판매를 위해 자사 직원 및 제3자를 통해 각국의 공무원에 뇌물을 제공했다는 혐의가 있었다. 에어버스는 제3자 중개인을 고용하고 뇌물을 제공한 것으로 인해 계약 금액에 차이가 나는 점을 발견하자 먼저 자체적으로 내부조사를 실시했다. 이후 이를 부패 위반 건을 전담하는 기구들인 영국 중대범죄수사청(SFO), 프랑스 경제전담검찰(PNF), 미국 법무부(DOJ)에 신고해 불법 중개인 고용 혐의에 대한 조사가 시작되었다.
기업 협조의 중요성
조사과정 전반에서 에어버스는 협조적이었는데, 2017년 3월 자사 홈페이지에 영국과 프랑스 당국이 사기, 뇌물, 부패 혐의로 자사를 조사 중에 있음을 밝히고, 두 당국과 적극 협조하겠다는 의사를 공표하였다. 이처럼 에어버스가 적극적인 협조를 공적으로 약속한 배경에는 기소유예약정(Deferred Prosecution Agreement, DPA)으로 법적 분쟁을 보다 빠르게 해결하기 위한 의도가 있었던 것으로 추측해 볼 수 있다.
부패 혐의를 신속하게 종결할 수 있는 수단으로 여겨지는 기소유예약정 진행 여부를 결정할 때 SFO는 △뇌물법 위반 사건의 중대성 △해당 기업 컴플라이언스 프로그램의 효율성 △기업의 과거 유사 행위 존재 유무 △혐의가 드러난 이후 기업 문화 변화를 위해 기업에서 시행한 노력의 정도 △무고한 직원이나 주주에 미칠 영향, 그리고 △수사과정 전반에서 기업의 협조 수준을 결정요인으로 고려한다고 밝힌 바 있다. SFO는 특히 “협조 없이는 합의도 없다(no co-operation means no agreement)”는 취지를 확고히 하고 있다.
기소유예약정 체결에서 기업 협조의 중요성은 2017년 롤스로이스 PLC(항공엔진사업부문)의 사례에서도 잘 드러난다. 2017년 영국 기반 다국적기업인 롤스로이스는 과거 2005년부터 2014년에 이르는 기간 중 인도네시아, 태국, 중국 등지에서 정부 고위층에 뇌물을 제공하고 자사 항공기 엔진 구매를 요구한 혐의가 있었다. 영국의 SFO는 미국 DOJ, 브라질 연방정부와 공조하였고, 그 결과 롤스로이스는 세 기관에 총 8억800만달러(6억6000만유로)에 달하는 벌금을 지불하였다. 이후 SFO는 2018년 말 공식 발언에서 롤스로이스 사례를 거론하며 부패, 뇌물 방지 실패, 허위 회계 등 기업의 부패 “혐의 자체는 매우 끔찍”했으며 롤스로이스의 기소가 거의 확실시되었으나, 기업에서 조사 초기 SFO에 제출한 보고서와 조사과정 전반에서 보여준 “정말 예외적인” 수준의 협조가 판사가 기소유예약정을 승인한 이유라고 밝혔다.
그렇다면 기소유예약정으로 이어질 수 있는 기업 협조는 어떤 형식과 방식으로 이루어질까? SFO는 각 기업들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협조를 했는지는 공표하지 않았지만 2019년 8월 6일 “기업 협조 지침(Corporate Co-operation Guidance)”을 통해 SFO의 조사에 협력하며 기업이 취해야 하는 조치를 상세히 설명하였다. 본 지침은 ‘협조’를 법으로 의무화된 수준 이상에서 SFO에 도움을 제공하는 것으로 정의하고, ‘혐의가 드러난 이후 합리적인 시간 내에 SFO에 보고 할 것’과 ‘사용 가능한 증거를 보존하고 즉시 SFO에 제공할 것’을 강조하고 있다.
기업 부패행위 제재 수단으로서의 기소유예약정(DPAs)
에어버스가 납부한 금액과 같이 천문학적인 액수의 기소유예 합의금은 법 집행기관들 및 전문기관 사이에 효과적인 기업 제재 수단으로 평가되고 있다. 그 이유로는 첫째, 기업의 재정을 위협할 만큼 큰 벌금이 부패 행위를 억제할 동기가 된다는 점, 둘째, 법 집행기관 입장에서 기소 후에는 재판과정이 장기화될 수 있다는 점, 셋째, 기업 입장에서는 부패 관련 법의 집행을 신속하게 종결할 수 있다는 점을 꼽을 수 있다. 특히 기업 입장에서 기소유예약정으로 빠르게 총 벌금액을 추산하고 혐의를 종결할 수 있다는 것은 기업의 주가 및 주식거래 측면에서 큰 이점이다. 유로뉴스에 기고한 영국 로펌 소속 변호사 Hannah Laming과 Andrew Wallis는 실제로 롤스로이스와 에어버스의 기소유예약정금(종결안)이 발표되던 날 두 기업의 주가가 상승한 것을 그 예로 들었다.
*영국에서는 기업이 아닌 개인을 대상으로는 기소유예약정을 진행하지 않음
**뇌물법 위반으로 기소유예약정을 체결한 5개 기업 중 AIRBUS만이 영국에 본사를 두지 않은 프랑스 기반 다국적 기업임
(표 출처: SFO 홈페이지, 2020년 3월 1일까지 데이터에 기반함)
한편 현재까지 영국에서 뇌물법에 대한 기업 혐의 종결을 위해 기소유예약정을 체결한 경우, 기업 임원이 기소된 경우가 없다는 점은 반부패에 대한 기소유예약정의 한계이다. 2017년 롤스로이스 사례의 경우에도 임원의 뇌물법 위반 혐의에 대한 조사가 시작되었으나 증거 수집 및 공적 이해가 부족하다는 이유로 기소로 이어지지 않고 종결되었다. 이는 앞서 언급한 SFO의 새로운 우선순위인 ‘수사 가속화’에 해당하는 사례이나, 부패 혐의가 돈으로 무마되었다는 반부패 활동 단체들의 엄청난 반발이 있었다.
국제 공조의 성과
SFO의 우선순위 중 하나인 ‘국내외 타 수사기관과의 협력’에서 타 수사기관은 뇌물수수 등 화이트칼라 범죄를 다루는 해외 기관들을 포괄한다. 실제로 영국 SFO와 FCPA를 주관하는 미 법무부(DOJ)는 다국적기업의 해외 뇌물 수사를 위해 오랜 기간 공조해왔으며, SFO에는 DOJ 직원이 파견되어 있기도 하다. SFO에 따르면 수사기관 간의 협력을 우선순위로 꼽은 것은 관할권이 유사하거나 중복되는 경우 해외 유관기관에서 증거를 얻는 것이 수사를 가속화할 수 있음을 인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다국적기업의 뇌물 혐의는 많은 경우 여러국가의 사업장에서 오랜 기간에 걸쳐 발생한다. 때문에 SFO와 DOJ를 중심으로 많은 정부 유관기관들이 다국적기업의 부패 혐의 조사를 위해 공조하고 있다. 롤스로이스 뿐만 아니라 에이버스 그룹의 경우에도 미국 법무부, 프랑스 정부와 영국 SFO가 공조하였으며, SFO와의 약정 체결과 동시에 미국 해외부패방지법(FCPA) 및 국제무기거래 규정인 ITAR 위반 혐의에 대한 합의금으로 미국 법무부에는 약 5억2600만유로(7천억원)를, 프랑스 정부에는 21억유로(2조8천억원)의 합의금을 지불키로 하였다. 따라서 본 뇌물공여 혐의로 인해 에어버스가 3국에 지불한 금액이 총 36억유로(약 4조7천억원)에 달하였다. 부패를 다루는 국경외 유관기관과의 협력은 폭넓은 관할 구역에서 발생한 부패 혐의의 동시적인 해결을 가능케 한다는 점에서 집행기관과 기업 양측에 이점으로 작용할 수 있다.
결론
에어버스와 롤스로이스의 사례는 조사과정에서 기업의 적극적인 협조와 국제 공조 강화라는 두가지 측면에서 최근 영국 뇌물법 시행(enforcement)의 전반적인 트렌드를 대표한다고 할 수 있다. FCPA도 최근 역대 최고의 합의금액을 기록하며 건재함을 자랑하는 가운데, SFO의 우선순위 발표와 에어버스의 사례 또한 보다 활발한 뇌물법의 집행을 예고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다만 기업의 뇌물 방지 실패 혐의는 조사와 종결이 수월하게 이루어지고 있는 반면, 해당 기업 임원의 부패 혐의 조사는 중단된 경우가 많아 향후 추세를 주목해볼 법 하다.